42 Seoul - 004_Minitalk

📢 Minitalk : 신호(Signal)로 쌓아 올린 통신의 규약(Protocol)

printf가 데이터의 ‘표현’을 다루는 과제였다면, Minitalk는 한 걸음 더 나아가, 분리된 프로세스들 사이에 어떻게 ‘의미’를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.

이 과제의 요구사항은 지극히 미니멀리즘하다: 네트워크 소켓 없이, 오직 두 종류의 유닉스 시그널(SIGUSR1, SIGUSR2)만을 이용해 문자열을 전송하라.

본래 시그널은 프로세스를 중단시키거나(SIGINT), 특정 상태를 알리는 등 단방향의 강제적인 ‘사건(Event)’을 통지하기 위한 원시적인 메커니즘이자 OS 단에서 제공하는 안전 장치이다.

Minitalk는 이 제약 조건을 역으로 이용하여, 가장 혼란스럽고 원시적인 통신 수단 위에 어떻게 질서정연한 ‘규약(Protocol)’을 세우고 안정적인 통신 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지 온몸으로 증명해야 하는,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정수가 담긴 과제였다.

💡 통신의 첫 단추: 약속(Convention)의 탄생

모든 통신은 ‘약속’에서 시작한다. Minitalk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시그널이 알파벳의 역할을 맡는다.

• SIGUSR1은 비트(bit) 0을 의미한다.
• SIGUSR2는 비트(bit) 1을 의미한다.

이 지극히 단순한 약속 하나가 무질서한 신호에 의미를 부여하는 첫걸음이다.

시그널을 받으면, 이에 따라 프로세스가 OS 단의 개입을 인지하게 되고, 그 결과로 약속된 신호의 모음을 보내준다.

예를 들어 문자 ‘A’(ASCII 65, 이진수 01000001)를 보내는 행위로

SIGUSR1, SIGUSR2, SIGUSR1, SIGUSR1, SIGUSR1, SIGUSR1, SIGUSR1, SIGUSR2

와 같은 8개의 시그널을 순차적으로 발신하는 행위로 번역된다.

이는 현대 네트워크 통신의 가장 밑단에 있는 물리 계층(Physical Layer)에서 전기 신호의 전압 차이를 0과 1로 해석하는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. 나는 이 과제에서 시그널을 통해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물리 계층을 직접 구현한 것이다.

🤝 프로토콜의 설계: 주소 지정, 직렬화, 그리고 동기화

단순히 0과 1을 보낼 수 있다고 해서 통신이 완성되지는 않는다. 단순히 통신을 하는 인코딩과 디코딩의 절차일 텐데, 결국 통신이라고 하는 것이 의미 있는 데이터 교환을 위해서는 정교한 프로토콜로의 구성이 필요시 된다.

1. 주소 지정 (Addressing) - PID: 서버는 시작과 동시에 자신의 PID(Process ID)를 출력한다. 이는 네트워크에서 서버가 자신의 IP 주소와 포트 번호를 알리는 것과 같다. PID는 운영체제가 각 프로세스에게 부여한 고유한 주소이며, 클라이언트는 kill 시스템 콜을 통해 이 주소로 정확하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. 통신의 가장 기본인 ‘누가 누구에게’ 보내는지를 명확히 하는 단계다.
2. 직렬화와 역직렬화 (Serialization & Deserialization) - 비트 연산:
   • 클라이언트 (송신자): 문자(char)라는 고수준 데이터를 (character >> i) & 1과 같은 비트 연산을 통해 8개의 비트 스트림으로 분해(직렬화)한다. 이는 통신 채널(시그널)을 통해 보낼 수 있는 형태로 데이터를 가공하는 과정이다.
   • 서버 (수신자): sigaction을 통해 등록된 핸들러 함수는 비동기적으로 도착하는 시그널들을 수신한다. 이 핸들러는 char_byte = (char_byte << 1) | bit; 코드를 통해 흩어져서 도착한 비트들을 다시 8비트의 문자(char)로 조립(역직렬화)한다. 이는 외부의 비동기적 이벤트를 처리하는 이벤트 기반 프로그래밍(Event-driven programming)의 핵심 모델을 직접 구현하는 경험이었다.
3. 흐름 제어 (Flow Control) - 동기화: 만약 클라이언트가 일방적으로 시그널을 폭주시키면 서버는 이를 모두 처리하지 못하고 유실된다. 이를 막기 위해 핸드셰이크(Handshake) 기반의 동기화 프로토콜을 도입해야 했다.
   • 클라이언트는 1비트를 보낸 후 pause()로 응답을 기다린다.
   • 서버는 1비트를 성공적으로 처리한 후, kill을 통해 클라이언트에게 ACK(Acknowledgement) 신호를 보낸다.
   • ACK 신호를 받은 클라이언트는 비로소 다음 비트를 보낸다.
   • 이 ‘보내고-받고-확인하는’ 과정은 신뢰성 있는 통신의 대명사인 TCP 프로토콜의 흐름 제어 원리와 정확히 같다. 이러한 구성은 가장 원시적인 재료로 현대적인 통신 프로토콜의 핵심 개념을 재창조한 것이다.

✨ 성찰 및 배운 점

Minitalk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운영체제와의 깊은 교감을 통해 통신의 본질을 탐구하게 한 과제였다.

• 프로토콜 설계의 본질: 통신은 단순한 데이터 전송이 아니라, 양측이 동의한 엄격한 ‘규칙의 집합’ 위에서 이루어진다. 주소 지정, 데이터 표현, 순서 보장, 오류 제어 등 모든 현대 네트워크 프로토콜에 담긴 철학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압축해서 경험할 수 있었다. 당연히 이러한 통신을 이해하고 난 뒤, 우아한 종료(graceful termination) 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, 이는 이후 프로젝트, 회사에서의 업무에서도 서버 작업에서도 아주 톡톡히 효과를 해주었다.
• 비동기 프로그래밍의 이해: 프로그램의 흐름이 나의 코드가 아닌 외부의 이벤트(시그널)에 의해 결정되는 이벤트 기반의 작업, 아주 원시적이지만 맛보기를 하고 직접 다루어 볼 수 있었다.
• 추상화에 대한 감사: 매일 당연하게 사용하던 TCP/IP 소켓 통신이 얼마나 많은 복잡성을 감추고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지, 가장 낮은 수준의 통신을 구현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.